군대에서 썼던 글입니다.
입대하고 약 1년이 지났다.
1월9일의 부루퉁한 칼바람에 양손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술도 못마시는 나는, 입대전날까지도 맨정신으로 드라이브의 사진첩들을 넘겨가며 추억을 되새기기를 반복하다 잠에들었다. 복부아래에서 올라오는 이상한 느낌에 헛구역질이 자꾸 났다. 나는 분명 삶의 새로운 기로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도착한 진주의 바람은 매서웠다. 살을 에는 바람과 그보다 더 한 기류, 민머리들로만 가득한 진주는 무겁고 아픈 분위기에 붙들려있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나에게는 관물함 정리, 구보, 총검술 모든 게 낯설었다. 그저 어머니와의 3분 통화에서 어떻게 울지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만 생각하던 미숙아였다.
81110, 나의 특기번호이다. 헌병이라는 특기인데 영어로 하면 꽤나 멋있다. 현실은 멋있는 것과 가장 동떨어져있다. 부대의 가장 노예와도 같은 번호, 죄수번호 아닌 특기번호이다. 내 이름 아래 두명의 이름 오른편에는 나란히 통역보조병(일본어)가 적혀있었다. 삶에서 수능 다음의 큰 좌절이었다. 몇주내내 뱃속에서 검은 무언가가 자라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소화제를 밥먹듯 먹었다.
두려움에 가득찬 채 비행단에 왔다. 나의 연고지 광주에 있는 비행단이었다. 허물어져가는 신병숙소에서 애써 웃어보이며 통성명을 해본다. 모두 썩 표정이 좋지 못했다.
잠시간의 교육이 끝나고 소대에 배속되었다. 기동2소대, 내가 앞으로 22개월간 근무할 곳이다. 첫 날은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주었다. 이병인 나부터 시작해서 곧 전역인 병장까지 모두 막내생활관에 모였다. 맞선임이 과자를 사주고 그것으로 앞으로 잘해보자는 식의 문구가 이어졌다. 몇몇은 내 계급이 뭐일거같냐라고 물어봤고 나는 종종 일병같다고 말했다. 그것이 나의 첫번째 실수였다.
751기, 전역을 한달앞둔 병장에게 나는 일병같다 라는 말을 했다. 내 사회적 상식으로 생각하기엔 이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물어본 것도 그 쪽이었으면서 답이 정해져있다니 부조리했다. 그 날 나는 알았다. 이곳의 상식과 바깥의 상식은 다르다는 것을.
내가 전입해오고 얼마 안있어 큰 훈련이 있었다. 막내들은 빠르게 OJT(직무간훈련)에 들어갔다. 단 며칠만에 작은 책 한권분량의 지식을 머릿속에 구겨넣으려고 하니 어지러웠다. 상황실 탄약 몇만몇천몇백몇십몇발 장갑차 내 적재탄약 몇만몇천몇백몇십몇발 대검 몇십개 총기 몇십개 등등 숫자의 폭력이 나에게 가해졌고 그 폭력에 맞서야만 했다.
첫 검사는 살벌했다. 석간근무가 끝난 오후 11시30분, 선임생활관으로 나와 내 동기가 불려갔다. 많은 눈이 우리들을 주목했다. 죽어가는 아이의 살덩이를 어떻게 쪼아먹을까 하며 노려보는 까마귀와 같았다. 불도 안킨 캄캄한 생활관에서 조용한 소리로 질문이 이어졌다. 소대 내 광학장비의 갯수는? 분해키트의 갯수는? 같은 질문이 나왔고 그에 우리는 전심전력으로 소리를 내어 대답해야만 했다. 나는 몇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였고 그들은 나의 의지를 문제삼았다. 죄송하다고 했지만 그치지 않았다. 오후근무를 타고 자고있는 맞선임을 깨워 집합하겠다고 한다.
칼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신병의 사과는 점점 처절해지고 있었다.
헌병은 항상 잠과 싸웠다. 밤낮이 매일 바뀌고 새벽근무도 밥먹듯이 뛰기에 우리는 틈틈이 잠을 보충해야만 했다. 보통 근무하고 잠을 자고 다시 근무하고 잠을 자는 것의 반복이었다. 도중에 훈련이나 교육이 낀다면 근무하고 훈련하고 근무하고 교육하고의 반복이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그때마다 나는 헌병에게 안걸리도록 주머니 깊게 숨겨들어온 미쿠의 넨드로이드를 끌어안고 위안했다. 남들이 보기에 한심해보일지라도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서 나에게 친숙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크나큰 치유가 되었다.
소대는 사람이 적고 항상 잠에 시달리며 화가 나 있으므로 언제나 말이 떠돌았다. 그 중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름이 들린다면 그는 상처받아야 했고 스스로 그 상처를 치료해야했다. 베이고 꿰매고 뜯기고 덧붙이며 나의 마음은 조금씩 성장해갔다. 다른의미로 아픔에 무뎌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절반은 제초를 하며 그 절반의 절반은 훈련을 받으며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질타를 받으며 1년을 보냈다. 부족함뿐이었던 신병은 여전히 부족한채 선임이 되었고 부족함에 나에게 기대던 후임은 신병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선임이 되었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가고 그 시간은 좋으나 싫으나 나에게 영향을 준다.
지금의 나는 영향을 받아들인 24세의 나이고, 내년의 나는 영향을 거부하고픈 25세의 나이다. 절망의 나날들은 떠나갔으며 희망의 미래만이 남았으리라 믿고 남은 1년을 알차게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