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에게 있어 동양의 「윤회전생(輪廻転生) 」이라는 사상은 어쩌면 당돌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기독교는 죽으면 천국 혹은 지옥에 가고, 거기서 영원히 살게되는 구조이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한 「영원회귀」는 서양의 사상으로서는 드물게 「윤회전생」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불교의 환생은 사람들이 수행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수행을 위해서 몇번이고 많은 삶의 경험을 반복시키는 것으로 되어있다.
「영원회귀」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그대로 반복한다. 이것이 무한히 계속된다. 지금까지 당신이 경험해온 모든 것,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통틀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사건으로 계속된다. 마치 같은 비디오를 반복하여 트는 것과 같다랄까.
이렇게 말해도, 「뭐, 그것도 나쁘지 않은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인생이 적당히 잘 굴러갔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적어도 당신은 알 수 없다. 그런 위험, 불안도 모두 통틀어서, 다시한번 Yes 라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모든 기쁨, 슬픔도, 앞으로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통틀어 「다시한번, 두번, 백만번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고 단언할 때,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말할 수 없는 한,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없다. 「모두 OK!」 라고 했을 때, 자신의 과거에 대한 복수심도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진다.
사람은 기쁨도 슬픔도 경험하며 살아간다. 만약 반복되는 삶이 있다면, 이번에는 재미있는 경험만을 하고싶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까지 경험해온 슬픈 사건, 억울했던 사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사건들을 모두 깨끗이 지워주는 약이 현실에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먹고싶을까. 그것을 먹는다면 지금까지 경험해온 모든 싫은 일, 슬픈 일이 전부 당신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즐거운 추억뿐이다.그런 약이 존재한다면 정말 시도해 볼 것인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면서까지 말이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실에서 체험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게 된다. 이 같은 약이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기쁜 일, 슬픈 일은 나눌 수 없다. 그것을 사람들도 잘 알고있다. 한쪽을 지워버리면 다른 한쪽도 함께 사라진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성질이다. 양쪽 모두를 긍정할 수 밖에 없다. 「취사선택」은 없다. 좋다고 생각되는 것만 선택해도 그것만 있으면 실제로는 전혀 아무 감정도 없다. 모든 체험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당신이다. 일부만을 뽑아온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그 체험도 이 체험도 모두 긍정해야 자신이 성립된다.
앞으로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다. 불안하다고 하다면 불안하겠지만,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어떻게든 된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포함하여 「모두 OK!」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변화가 두렵지 않다. 뭔가에 도전해 보는 것도 OK이고, 계속 자고싶다면 계속 자는 것도 OK이다. 그것도 저것도 OK이다.
-슈타인즈게이트 영원회귀의 판도라를 읽으며-